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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의 삶] 소극적인 신앙인도 적극적인 신앙인도 다 쓰신다 (역대하 27:1 -9 )

      날짜 : 2018. 12. 09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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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극적 신앙 적극적인 신앙 쓰신다

               


        역대하 27:1 -9 |    12/ 8


        1, (2)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요담은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왕입니다. 통치기간도 16입니다. 열왕기에 보면 20년인데 뒤부분 4년은 자기 아들과 함께 통치한 기간까지 열왕기에서는 기록한것입니다.

        요담에 대한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아쉬운점은 있습니다.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들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왜 요담이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짐작하기 쉽습니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가 40년 길게 통치했는데 정권초기, 즉 어릴때에는 겸손하고 하나님을 잘의지했는데 통치기간이 40년에 가까워지니 많이 교만해 진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제사장 반열에 있는 제사장만이 드리는 분햐안을 뺏앗아서 스스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막는 제사장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때 이마에 문둥병이 발생하셨고 결국 그 이후에 성전에서도 내쫒김을 당하고, 궁궐에서도 내쫒김을 당해서 별체에서 지내고, 죽어서도 왕실묘지에서 내쫒김을 당하여 열왕의 묘실에 들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교만하고 + 화를 내를 사람]을 그것도 성전에서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그 값을 지불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가 높이 올라갈수록, 많이 배울수록, 많이 사셨을수록 더 겸손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 아들 요람은 [성전에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즉 아버지의 [내쫒김 트라우마]가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즉 성전에서 잘못행동할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응징하시는지를 두눈으로 보았기에 요람은 두려운 마음에 성전에 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è 사실여기서 요람이 하나님을 잘못안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면 용서를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지금 요담은 이처럼 [내쫒김 트라우마]극복하기 위하여 오히려 성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잘 못할까봐 신앙생활 시작안한다] [헌금생활 못할까봐 아예 처음부터 시작을 안하다] [들어가지 않으면 내쫒기지 않으니까요][실업안당할려면 직업을 안가지면 됩니다][이혼 안할려면 결혼 안하면 됩니다] [외양간이 깨끗할려면 소를 안키우면 됩니다][교회건물 깨끗하게 쓸려면 사람들 제한해서 받으면 됩니다] 즉 오늘 요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어쫒김의 트라우마]때문에 신앙과 삶이 매우 소극적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이 소극적이다보니 간신히 자기만 죄를 안짓고 백성들은 여전히 부패하게 되는것 입니다. 만약에 요담이 적극적이고 뜨거운 신앙을 가졌다면 백성들도 변하였을것 입니다. 달란트비유를 보십시요. 1달란트 받은사람이 1달란트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책망받고 쫒겨났어요. 왜요?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그래도 어떤이는 이렇게 말할수있어요. ‘그래도 원금은 가져왔잖아요. 차라리 손해보는 것 보다 낫지 않아요è (아닙니다) 달란트라는 말자체가 어떤면에서는 남겨야되는 그런것입니다. 묻어두면 안되는 그런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자체가 (개신교-프로테스탄트,저항) / 세상에 저항하여 전도하는 것입니다. è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내가 그래도 사는 것입니다. ç소돔고 고모라의 노인 전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이런데서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다고 하자 그 노인말하기를 이렇게라도 안하면 내가 타락하고, 내가 죄질 것 같아서 입니다


        2.  (6) 요담이 바른길을 걸어서 점점강하여졌다  

          그런데 오늘 요담에 대해서 하나님은 끝으로 칭찬을 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요담이 끝까지 실패하지 않고 점점 강하여졌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른길입니까?  세상에서 제시하는 바른길의 종류는 많습니다. 그런데 이세상에 오직 완전한 바른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같은절에 힌트가 있습니다. [여호와앞에서]입니다. 코람데오의 길 = 이것이 바로 바른길입니다.  5+5=10입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6이라고 했고, 어떤아이는 9라고 했고 어떤 아이는 10이라고 했습니다. 정답은 10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6이라고 대답한 아이보다 9라고 대답한 아이에게 점수를 더 줄수는 없습니다. 다 틀린것입니다.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제시하는 바른길은 비교적 바른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른길은 오직 [여호와앞에서 사는 길]입니다. 

        요담이 비록 소극적인 성품을 가진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점점강성할수 있었던 이유는,6> 여호와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비록 성품이 조금 소극적 이었어도 다윗성에 장사되는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강성해짐의 축복이죠..

         신앙은 적극적인 것이 좋은데 (베드로처럼) 그런데그것이 어려워도 괜찮아요. 오늘 요담처럼 조금은 겁이많고 소극적이어도 여호와앞에서 바른길을 가면è갑자기는 아니지만 점점 강성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에덴교회 이런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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